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네 마음에다 / 구상



                                        네 마음에다 / 구상

                                요즘 멀쩡한 사람들 헛소리에
                                너 나 없이 놀아날까 두렵다

                               길은 장님에게 물어라
                              해답은 벙어리에게 들어라
                              시비는 귀머거리에게서 밝히라
                              진실은 바보에게서 구하라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길은 네 마음에다 물어라
                             해답은 네 마음에게 들어라
                             시비는 네 마음에서 밝히라
                             진실은 네 마음에다 구하라



구상 (1919~2002)

1919년 원산에서 태어나 1946년 동인시집 ‘응향(凝香)’을 발표하면서 시단에 데뷔하였으나 ‘응향’에 실린 시들이 반사회주의적이라는 비판을 받고 1947년 북한을 탈출, 월남했다 특히 동시대의 화가였던 鄕友 이중섭과의 교류가 널리 감동적으로 회자된다.

시집으로는 <초토의 시> <믿음의 실상> <까마귀> <유치찬란> <모과 옹두리에도 사연이> <구상 시전집> 등이 있다.

시읽기/ 윤형돈

시인의 추상같은 구도자적인 메시지에 등골이 오싹하고 오금이 서늘하다. 의연한 ‘구상나무’가 한낱 삭정이 신세인 땔감나무에 호령하듯 시상(詩想) 전개의 파급은 일성호가(一聲胡笳)로 ‘광야의 외치는 자의 소리’에 비견된다.

요즘 ‘멀쩡한 사람들’이 온전하고 정상적인 상태에 있지 않다 왜? ‘헛소리’ 허튼 짓을 수시로 일삼기 때문이다 그것도 자주 왕왕 이따금 대낮의 어둠 속에서 허언과 거짓말로 원죄의 되풀이를 자행하고 있기 때문이다.

가이드를 폭행하고 천사를 능욕하는 해리성(解離性 )인격 장애자들이 지근거리에서 우는 사자처럼 먹잇감을 찾아 몰려다닌다. 다중인격의 양두구육에서 나오는 가식과 위선에 놀아나고 휘둘리는 민초들의 탄성과 울혈이 곳곳에서 가슴을 치고 절망한다.

검은 색 승용차에서 내려 피의자 신분으로 포토라인에 선 자들은 한결같이 ‘진실은 곧 밝혀집니다’ ‘성실히 조사에 임하겠습니다’ ‘거짓은 명명백백하게 밝혀집니다’ ‘정의가 바로 서길 기대합니다’ 아니면 ‘묵묵부답’으로 서 있다가 총총히 그들만의 조사실 계단을 오른다. 좀비처럼 출몰하는 지지자들을 등에 업었으니 잠시 잔등에 옴 붙은 가려움도 능히 견뎌낼 만하겠다.

백성이 위정자들을 우려하고 민초들이 정치 모리배를 걱정하는 참으로 불행한 시대에 우리는 살고 있다 을이 갑에 절망하고 꼴뚜기가 철갑상어의 횡포에 신음하는 세태에, 시인의 역설은 여기서 반전을 도모하며 광휘가 번득인다. 패러독스(paradox)의 세계에서 장님은 보고 귀머거리는 들으며 벙어리는 말하기 때문에 진실은 오히려 바보의 형안(炯眼)에서 도출되는 것이다.

그러나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 왜 굳이 천형의 불편한 그들에게 의탁하여 도움을 청하겠는가? 시인의 말은 단호하다. 길과 해답, 시비와 진실은 바로 네 마음 안에 있다고. 칸트의 순수 이성이 ‘하늘에는 빛난 별, 가슴에는 도덕률’이라고 선언했을 때, 바로 그 ‘네 마음에다’ 귀 기울이는 ‘마음의 법정’이 우리 인간에겐 최후의 보루로 남아있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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