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귀향/ 헤르만 헤세




귀향/ 헤르만 헤세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향의 손이었습니다
그러나 아직도 지난 날의 무거운
짐 속에서 회복하지 못했습니다

나는 가는 곳마다
넋을 가라앉혀 주는 것을 찾았습니다
이제 훨씬 진정됐습니다
그러나 새로이 또 고통을 원하고 있습니다

오십시오, 낯익은 고통들이여,
나는 환락에 싫증이 났습니다
자, 우리들은 또다시 싸웁니다
가슴에 가슴을 부딪고 싸웁니다



헤르만 헤세(1877~1962) 독일, 스위스

성장에 대한 통렬한 성찰과 인간의 내면에 공존하는 양면성을 다룬 작품을 선보였으며, 동양의 철학 사상에도 깊은 관심을 보였다. 1946년 <유리알 유희>로 노벨 문학상을 수상하였다. “새는 알에서 나오려고 싸운다. 알은 곧 세계이다. 태어나려고 하는 자는 하나의 세계를 파괴하지 않으면 안 된다.“ 이것은 《데미안》의 한 구절로, 세계에서 가장 유명한 소설 구절 중 하나라고 할 수 있다. 특히 <지와 사랑> <수레바퀴 밑에서>등은 청춘의 고뇌와 휴머니즘을 표현한 작품이다.

시읽기/ 윤형돈

‘타향살이 몇 해던가 손꼽아 헤어보니 / 고향 떠난 십여 년에 청춘만 늙어 / 부평 같은 내 신세가 혼자도 기막혀서 / 창문 열고 바라보니 하늘은 저쪽 / 고향 앞에 버드나무 올봄도 푸르련만 / 호들기를 꺾어 불던 그때는 옛날 / 타향이라 정이 들면 내 고향 되는 것을 / 가도 그만 와도 그만 언제나 고향’... 낯선 타지에서 막무가내로 세파에 시달릴 때, 어쩌다 우연히 해묵은 정서를 건드리는 그런 구닥다리 노래가 있어 우리네 가파른 심사는 잠시 쉬었다 가던 여정(旅程)을 계속한다.

고향을 떠나온 지 수 십 여년, 시인의 향수병은 나날이 깊어만 갔다. 그의 고백처럼 ‘나는 이미 오랫동안 타향의 손이었습니다.’ ‘손’은 남의 집에 묵고 있는 길손이요, 나그네다 그러니 고향집을 떠나 객지에서 느끼는 시름이나 걱정이 태산이었을 것이다. 그러나 아직도 떠나온 자에게만 주어지는 천형(天刑) 같은 삶의 무게, 바로 그 ‘무거운 짐‘을 나 홀로 지고 오도 가도 못하는 신세가 되었다. 어쩌다 지친 육신과 영혼을 위무해주는 곳에 잠시 머문 적도 있지만, 거기에 안주할 수 없어 박차고 또 다른 차원의 ’고통‘의 미학을 찾고 있다. 낯익고 낯 설은 대상일수록 설레고 도전 의지로 불탄다. 낭비뿐인 쾌락놀음도 이제 그만, 순간의 영광은 쓰레기다! 그렇게 선한 싸움 끝에 당도하는 아름다운 본향, 거기 무궁한 세월이 흘러갈 때, 밤에는 귀거래사를 짓고 낮에는 밭 갈고 씨 뿌리며 고향의 잠든 넋을 깨우며 흙에 살리라.

나는 한때 ‘떠돌다 떠돌다 어느 나무 그늘에 외로이 외로이 잠든다 해도‘란 ’모란동백‘의 가사에 미쳐 비정한 도시의 숲속을 승냥이처럼 헤맨 적이 있다 아니, 최근 ’보헤미안 랩소디‘의 광시곡은 떠돌이의 절규에 방점을 찍어 주었다고나 할까 니체의 말이 아니라도 인간은 노력하는 한 방황하기 마련인가 보다. 타고난 방랑자의 습벽으로 고뇌하다가 결국은 귀양길에서 ’귀향‘해야 하는 슬픈 운명에게 아직 ’끝나지 않은 이야기‘들은 차가운 가슴을 덥혀주는 따뜻한 아랫목으로 남아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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