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입술/ 서기석

서기석(1972~)

충남 공주 출생

2016 계간 문예춘추 시 등단

2015 버스정류장 인문학 글판 시공모당선

2015 서울 지하철 스크린도어 시 공모 당선

2017 버스정류장 인문학 들판 시 재능기부

동인지 ‘희망의 시인세상’ 1~4집 참여

2019년 중앙시조백일장 7월 차하

현재 수원문인협회 사무차장으로 활동 중

 

 

도수가 없는 데도

취기가 감돌고

 

안주 없이 마셔야

제 맛이 배어나고

 

혼자는 마실 수 없어

연인에게 제격인 술

 

잔에는 담지 못해

술잔이 필요 없고

 

마시고 마셔도

까닭 없이 갈증 나서

 

자꾸만 그리워지는

그래서 더 아득한.

 

시 읽기/ 윤형돈

 

순망치한脣亡齒寒, 짜장, 입술이 없으면 이가 시리다. 아니, 입술덮밥을 못 먹는다. 소위 입 안에서 스키를 탈 수도 없다. 불타는 설왕설래舌往舌來는 더욱 불가능하다. 입술로 술을 마시면 대책 없이 취하는 술이 입술이라 했던가!

 

우리 젊은 날, 밤새워 가슴 졸이며 연서를 쓰고 붉은 입술로 꾸욱 입술 도장 편지를 전해 주던 심쿵한 기억, 그 긴긴 여운은 사뭇 오래갔다. 시인은 지금 ‘입술’을 제목으로 시를 쓰면서 즐거운 상상의 나래를 펴고 있는 중이다. ‘잔에는 담지 못해 술잔이 필요 없고’ ‘도수가 없는 데도 취기는 감돌고’ 있는 몽상의 형국이다. 어쨌든, 시 쓰기는 영혼을 뚫고 들어가는 일! 마음이 지혜로운 자와 입술이 정직한 자는 알리라,

 

최근 들어 우리 고유의 서정성을 갖고 있는 시조 율조律調를 맞추고 가락 읊는 재미에 푹 빠진 시인은 ‘마시고 마셔도’ 혀 밑에 갈증의 샘이 고인다. ‘혼자는 마실 수 없어’ 두루두루 나누어 마시고 싶은 건강한 詩 욕구가 불타오른다. 행여나 못 생긴 입술을 가진 사람이라도 두려워할 필요는 없겠다. 이 세상에 같은 사람, 같은 입술 모양이 없는 건 천만다행이다.

 

이 문장은 살을 베일 것처럼 날카롭다. 왜 하필 입술인가? 입술은 육체의 나팔꽃, 몸의 입구인 동시에 영혼의 입구이다. 입술이 없다면 입은 자신의 형태와 이미지를 가질 수 없다 특히나 사랑의 이미지는 헤어진 후에도 오랜 세월 귀먹고 눈멀어도 내 입술은 당신의 입술을 기억한다. ‘마시고 마셔도 까닭 없이 갈증 나서’ 그리움의 깊이가 클수록 입술은 크게 열린다.

 

입술은 기억의 대상이며 감미로움의 잔반殘飯이다. 입술이 입술을 기억하고 그리움이 입술을 연다는 것, 그리워하기에 입술이 열려있다는 것, 몸의 기억이 의식의 시간보다 더 강렬하기 때문이다. 갈증의 신호 때문에 열리고 닫히는 입술, 결핍과 욕망에 대해 뚜렷이 반응하는 ‘지금 그 사람 이름은 잊었지만 그 눈동자 입술은 내 가슴에 있다’ 영과 육의 기억은 ‘자꾸만 그리워지는 그래서 더 아득한’ 입술을 술 아닌 술로 마시는 이유가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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