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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계문화유산 해남 땅끝 마을 ‘대흥사’

역사의 향기가 사찰 곳곳에서

육지의 끝자락, 남해를 바라보고 있는 해남에는 세계문화유산이 있다. 신라말에 창건된 사찰로 알려진 ‘대흥사(대한불교조계종 제22교구 본사)는 유구한 역사만큼이나 많은 것을 지닌 사찰이다. 해남의 자랑인 두륜산 정상은 와불(누워있는 부처)모양을 하고 있으며 두륜산의 입구에 대흥사가 자리를 잡고 있다.

 

 

대흥사를 들어가기 위해 산문을 넘다보면 고개를 갸우뚱 한다. 일반적으로 사찰의 일주문에 있는 사천왕상이 없기 때문이다. 대흥사에서는 사천왕대신 아기동자스님을 배치했다. 일주문을 지나 조금 걸어 들어가면 ‘부도’가 보인다. 일반 사찰에서 통상 부도는 대웅전 뒤편에 자리를 잡고 있지만 대흥사는 산문 근처에 있다. 대흥사 부도에는 서산대사를 비롯한 유명한 스님들의 사리를 잘 모셔놓았다고 한다.

 

 

 

대흥사 내부 구조도 일반 사찰과는 많이 다르다. 사찰 한 가운데를 가로지르는 금당천(金塘川)을 중심으로 마치 별개의 건물인 듯 남원과 북원으로 나뉘어져 있다. 북원은 석가모니불을 모신 대웅전을 중심으로 부속 건물들이 들어서 있다. 대웅전은 연도를 알 수 없을 정도로 오랜 된 건물인 듯 세월의 흔적을 고스란히 간직하고 있다. 대웅전에 들어서면 제일먼저 보이는 것이 현판이다. 현판은 조선 후기의 명필 이광사(李匡師)가 썼다고 한다. 정면5칸, 측면 3칸의 평범해 보이는 건물이지만 대웅전다운 위엄은 어디에 내놔도 빠지지 않는다.

 

 

대웅전을 빠져 나와 경치가 일색이라는 남원으로 가는 길에는 종루가 있다. 대흥사에 있는 종은 원래 탑산사 동종이다. 보물 제88호인 동종은 원래 전라남도 장흥군 대덕읍의 탑산사에 있었으나 1923년 화재로 절이 불타버리자 대흥사로 옮겨왔다. 그리고 종루 아래에는 종과 종루를 관리하는 화려한 건물이 있다. 그리고 그 앞에 연대를 알 수 없는 너무 커다란 나무가 서있다. 보호수로 지정되어 있는 나무라고 한다. 시대를 뛰어 넘어 긴 세월을 대흥사와 함께한 보호수는 대흥사 스님들은 물론 일반인들도 경건한 마음을 가지게 한다.

 

 

종루에서부터 남원까지 가는 길에는 스님들이 기거하는 숙소와 손님들을 맞는 건물들이 다로 만들어져 있다. 그리고 그 건물들을 지나면 남원에 이르게 된다. 북원이 주로 부처와 관계된 건물이라면 남원은 주로 인간세상을 구원하기 위해 평생을 살다간 고승들과 관계된 건물들이 주를 이루고 있다. 남원을 구체적으로 보면 ‘천불전’과 서산대사의 유물이 있는 ‘표충사(表忠寺) 일곽, 다도로 유명한 초의선사(草衣禪師)가 중건한 대광명전(大光明殿) 일곽으로 나뉜다.

 

천불전은 보물 제1807호 이다. 절경을 배경으로 넓은 산간분지에 계류를 끼고 자리하고 있다. 또 대흥사 천불전도 일반적인 정연한 가람배치와 달리 여러 불전들을 자연적인 지형에 맞추어 배치해 자연과 잘 어우러져 있음을 볼 수 있다.

 

 

천불전의 부속 건물들을 보면 용화당, 가허루, 봉향각, 동국선원, 종무소 등이 군무를 추는 모습으로 배치되어 있다. 기록에 의하면 조선시대인 1811년(순조 11)에 화재로 불탔으나 2년 뒤인 1813년에 초의선사의 스승인 완호(玩虎)대사와 제성(濟醒)대사에 의하여 중건되었다고 한다. 천불전에는 1817년에 조성된 천불상(千佛像)이 봉안되어 있다.

 

 

 

 

천불전과 함께 남원을 채우고 있는 중요 건물인 표충사는 임진왜란 당시 큰 공을 세운 서산대사 휴정(休靜, 1520~1604)의 충절을 기리기 위해 만들어졌다. 그래서 표충사 입구에는 장군샘이라는 별도의 우물도 있다. 또한 그 옆에는 불교식 다도를 완성 했다는 초의선사와 동상과 대광명정이 있다.

 

또한 표충사 앞에는 연꽃들이 줄을 지어 피어 있는 작은 연못과 함께 그림책에서나 볼 수 있는 소나무가 연못에 그림자를 드리우고 있어 지나가는 관람객들의 시선을 끌어 모으고 있다.

 

전체적으로 보면 대흥사는 조계종 사찰이기는 하지만 자연과 함께 하려는 노력들이 가득한 사찰이다. 건물을 짓기 위해 인위적으로 지형을 바꾸지 않고 자연에 순응하며, 자연에 거슬리지 않도록 건물을 배치한 것이 눈에 띤다. 또한 오래된 역사를 가직하고 있다는 향기가 사찰 곳곳에서 풍겨 나온다. 대부분의 건물이 맞배지붕인 것은 이 사찰이 왕족보다는 일반인들, 특히 서민들을 위한 사찰이었음 말해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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