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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분과 실리를 동시에 찾았던 서희의 눈이 필요한 지금


    외교실패의 결과는 백성의 고단함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외교는 정치의 연장이라는 케케묵은 정치학 이론을 다시 꺼내들지 않더라도 외교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지는 역사적 사실을 통해 충분히 알 수 있는 일이다. 군사를 동원하지 않더라도 외교를 통해 역사를 넓힌 일도 있으며 때로는 외교를 잘못해 수많은 백성들이 고초를 겪은 역사도 수없이 많다.

그래서 외교는 때로 나라의 흥망성쇠를 결정하는 결정적인 요인이 되기도 한다. 그런데 정작 외교의 역량은 어디에서 나오는 것인지에 대해서는 말이 적은 편이다. 외교의 역량은 외교가의 역량이 가장 중요한 부분을 차지하고 있으며 국가의 힘과 세계사에 대한 안목도 매우 중요하게 작용한다.

조선은 건국이후 명나라와 협상을 하면서 바다로의 진출을 포기했다. 대항해시대에 건국된 조선이 바다를 포기함에 따라 조선은 어느 역대 정권보다 세계사의 흐름에 둔감했다. 조선이 가진 역량에 비해 세계사의 흐름에 둔감하고 국내에서 정권을 잡은 것에만 몰두한 기득권의 잘못된 선택은 늘 백성들의 피와 눈물을 요구했다.

부패로 인해 스스로 무너진 명나라와의 의리를 지켜야 한다며 후금(청나라)과 타협하지 못한 조선은 병자호란을 통해 건국 이래 최고의 굴욕을 겪었다. 임금이 청나라의 왕 앞에서 머리를 숙이고 3배 9고두(세 번 절하고 아홉 번 머리를 조아림)를 했고, 조선 백성 30만 이상이 끌려가는 참상을 겪어야 하는 비극을 만들어냈다. 조선은 후기에 들어서 까지도 세계정세에 어두워 일본에게 식민지 지배까지 당했다.

외교로 인해 나라가 흥하거나 망하는 것에 대한 판단은 늘 정권을 잡은 기득권의 몫이었다. 외교실패의 결과는 기득권의 책임이 아닌 국민들의 피폐로 이어지는 반복적인 역사 앞에 서서 바라보는 오늘날의 외교는 과거보다 더 신중한 판단이 요구되고 있다.

최근 동북아시아를 둘러쌓고 벌어지는 국제정세는 한치 앞을 가늠하기 어렵다. 초강대국 미국의 행보는 자국의 이익 앞에는 그 어떤 정의도 없다는 태도를 취하고 있다. 미국의 최근 태도를 보면 ‘유네스코 탈퇴, 이란 핵협상 파기, 한반도 군사 파견 증강’등 목적과 수단을 가리지 않는 조폭과 같은 행동 패턴을 보이고 있다.

미국과 대등한 지위를 요구하는 중국은 우리 대역무역의 약 삼분지일을 차지하는 중요 교역국임에도 불구하고 결정적인 순간에는 매번 북한 편을 들어주고 있다. 러시아도 상황은 비슷하며 일본은 한반도 긴장을 이용해 재무장을 꿈꾸고 있다. 어느 하나 강대국 아닌 나라가 없음에도 한국이 지금까지 잘 버텨온 것이 스스로 자랑스러울 정도다.

문제는 복잡하고 다다한 국제정세를 바라보면서 우리가 어떤 태도를 취할 것인가의 문제다. 주변에 강국이 아무리 많다고 하지만 우리의 태도에 따라 외교적 역량은 다를 수 있다. 고려 성종 시대의 문관 서희는 거란의 침입에 당당했다. 거란의 대규모 침입에 고려의 조정이 화친과 영토분할을 주장한 반면 서희는 오히려 당당함을 바탕으로 외교를 펼쳐 압록강 동쪽의 중요 군사진지 6곳을 차지한 인물이다.

고려 성종시대의 동북아시아는 송나라와 거란족이 대치하고 있었으며 몽골과 금나라가 역사적으로 힘을 가지고 태동하는 시기 이었다. 고려의 지향했던 고토회복과 정면 배치되는 국제현실 속에서 명분과 실리를 제대로 찾았던 인물이 서희다. 지금 우리의 외교관들이 배워야 할 것은 기득권의 유지가 아니고 서희와 같은 국익 우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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