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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자리걸음 10년 수원, 바뀔 때가 됐다

  노쇠함을 벗어나 원숙함으로 가야
  수원 정치인들 자신의 능력을 침소봉대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한때 수원이 경기남부의 주역이었던 때가 있었다. 도시에 도로는 새로 만들어지고 세계문화유산 수원화성을 중심으로 한 수원화성문화제는 국제행사로 성장하던 시기가 있었다. 시민들은 자신감에 차 있었고 발걸음에 힘이 넘쳐나 있었다. 그리고 많은 시군들이 수원을 부러워했었다.



그런데 지난 몇 년이라는 터널을 지나오면서 수원의 자신감은 급격하게 줄어들고 사람들은 점차 위축되어 갔다. 정치는 몇몇 사람들에 독식되고 주요 요직은 몇몇 정치인의 문고리들이 점령했다. 관청을 중심으로 발주되는 일은 정치인들의 동문이라는 사람들이 독식을 하다시피 했고 사람들은 그것에 익숙해져 갔다.

문화도시를 표방한다면서 시가 만들어 낸 이중 잣대는 그들만의 문화제와 행사가 된지 오래다. 크거나 작거나 행사가 열리면 늘 같은 사람들이 자리를 채우고 앉아 그들만의 문화를 만들어 낯선 이들의 참여를 보이지 않게 밀어내기 일쑤였다. 새로운 시도나 아이디어는 늘 보이지 않는 유리벽에 가로막혀 노출의 기회조차 얻지 못한 세월이 벌써 7년이다.

그러나 사이 광명시는 폐광산을 가지고 관광객 200만을 불러 모으는 기적을 일으켰으며, 화성시는 경기도를 상징하는 성장의 구심점이 됐다. 그리고 경기도의 작은 도시 오산은 교육도시로 우뚝 성장해 시민 전원이 대학을 다니는 모습을 보여주고 있다.

빚에 허덕이던 용인은 어느새 빚 청산을 하고 다시 한 번 관광용인의 재기를 서두르고 있다. 적자가 아닌 흑자관광 용인은 용인이 가지고 있는 에버랜드와 용인민속촌, 경기도 어린이 박물관, 자연수목원, 넓은 골프장 등이 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다. 정치가 정신을 차리고 재정비에 나선 것만으로도 용인은 관광도시로 우뚝 서고 있다.

반면 문화도시를 표방한 수원만 제자리걸음을 걷고 있을 뿐이다. ‘문화’라는 단어가 정치, 경제, 사회를 다 포용할 수 있는 단어임에도 불구하고 어느것 하나 제대로 융합되거나 포용하지 못한 결과의 산물이 지금의 수원이다. 이는 수원의 오피니언 리더들이 바뀌지 않은 탓이 크며 이를 용인한 유권자의 잘못도 크다.

수년째 똑같은 얼굴들이, 비슷비슷한 공약들을 들고 나와 세력과시에만 몰두한 수원의 정치지형은 식상함과 철지난 반찬의 기준이 된 것처럼 불편함 뿐이다. 그럼에도 사람이 바뀔 것이라고 기대해보지만 바뀔 가능성은 없어 보인다. 여전히 그들은 “내가 아니면 누가”라는 오만에 차있고 “한 번 더”라며 자신의 능력을 침소봉대하며 자신이 우상화되어지길 원하고 있기 때문이다.

사실은 식상한 공약을 매번 들고 나와, 똑 같은 얼굴을 보여주는 그들이 수원에 있건 혹은 없건 간에 수원은 스스로 알아서 잘 돌아간다. 다만 식상한 얼굴들이 존재함으로써 수원의 노쇠함이 가속될 뿐이다.

노쇠함을 다른 말로 원숙함이라고 할 수는 있으나 원숙함을 보여줄 수원의 정치적 큰 리더가 없을 뿐이다. 오죽하면 수년째 이웃 지자체와의 싸움조차 정치적으로 해결 못하는 못난이들이 아옹다옹 모여 “내가 수원 제일이다”라고 떠들 뿐이다. 원숙한 큰 정치인이 그리운 계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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