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후회가 되는 한국인들의 뒤늦은 결정

저녁이 있는 삶을 함께 노력해봐야

아침부터 머리가 깨어질 듯 아프고 학교가기가 죽기보다 싫은 날, 열이 나는 무거운 몸을 이끌고 간신히 학교에 도착했더니 담임선생님이 위로를 한답시고 집에 가서 쉬라고 한다. 조퇴다. 멍한 머리로 주섬주섬 가방을 챙겨 집으로 돌아오는 길.........,


   <전경만의 와이즈 칼럼>

운동장에서 들려오는 아이들의 체육시간 구령소리는 왠지 썰렁하다. 마치 먼 곳에서 들려오는 종소리처럼 공허하고 마음은 뭐라 표현할 수 없을 만큼 싱숭생숭해 진다. 버스정류장에 도착하자 마치 기다렸다는 듯 버스가 도착한다. 딱 두 시간 전, 학교에 등교하기 전에 긴 기다림 끝에 올라탔던 버스와는 사뭇 다르다. 내부는 텅텅 비어 아무 곳이나 내가 원하는 곳에 앉을 수 있어 더 당황스러운 텅빈 버스의 한 구석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으니 아픈 곳이 말짱하게 사라졌다. 머리는 차분하고 맑아지더니 온몸에 일어났던 열기운도 조금 가신다. 그렇게 집으로 귀가를 하던 중 깨달은 것이 하나 있다. 나를 아프게 하는 중요 원인 중 하나는 분명 학교라는 괴물이라는 것이고 가끔 학교라는 괴물과 멀어지는 것만으로도 몸이 좋아질 수 있다는 것이다.

성인이 되어서도 상황은 비슷하다. 자신을 둘러싸고 있는 것들로부터의 일탈, 너무나 익숙한 직장과 집, 거리, 자동차로부터 딱 하루 또는 며칠간의 일탈이 나를 건강하게 만들기도 한다. 그것이 휴가의 기본 개념이다.

선진국일수록 휴가에 대한 권리와 보장이 확실하고 되도록 근무시간 중에도 규칙적인 휴식을 권하는 것은 기본적으로 아프지 말고 즐겁게 일하는 것이 더 능률이 오르기 때문이다. 그런 사실을 한국인만 몰랐던 것은 아니다. 많은 한국인들이 알고는 있었지만 사업주나 경영진만 모르고 있었을 뿐이다.

‘근로기준법 개정안’이 지난 2018년 2월 국회를 통과하면서 주당 법정 근로시간이 현행 68시간(평일 40시간+평일 연장 12시간+휴일근로 16시간)에서 52시간(주 40시간+연장근로 12시간)으로 단축됐다. 처음 이 법안이 시행되자 언론들은 호들갑을 떨며 사업주의 손실이 클 것이라고 하면서 신규일자리 창출도 기대한다는 목소리를 내기는 했으나 정작 가장 중요한 노동자들의 휴식을 어떻게 진행할 것인가에 대한 구체적 발굴 내용이 없었다. 기본적으로 한국의 언론들은 가진자 편에 서있다.

갑자기 얻어진 시간, 마치 수업을 빼먹고 조퇴를 한 것처럼 멍한 시간들이 생겨났음에도 어찌할 바를 모르는 상황이 되어버렸다. 일하는 것 말고는 딱히 해본 것도 없는 한국 사람들의 저녁이 있는 삶에 대해 어떻게 해야 좋을지 누구하나 제대로 알려주는 법도 없는 상황이다.

가족들과의 휴식, 아내와의 연애, 한 번도 해보지 않았던 운동에 도전해보거나 무작정 걷기라도 해보면 좋겠지만 아이들은 이미 가족해체의 저녁이 더 익숙하고, 아내는 혼자 놀기를 더 좋아한지 오래됐으며 나 또한 아내를 앞세우지 않고는 무엇 하나 혼자 할 수 없는, 놀 줄 모르는 바보가 된지 오래전이다. 우리사회가 너무 늦게 근로시간 줄이기를 결정한 것이 아닌가 싶다. 그러나 더 늦어졌다면 한국은 아마도 안드로이드 공화국이 되었을 것이다. 어렵지만 늘어난 시간을 돈 안들이고 잘 즐길 수 있는 방안을 함께 연구해 봐야할 시간이다. 다 같이 아프지 않기 위해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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